2013년 4월 1일,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살랑살랑 봄이 오던 그날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해라는 도시에 발을 디뎠다. 벚꽃 축제가 막 시작되는 날이자, 해군 부사관 후보생의 입영식이 있는 날이었다. 벚꽃이 예쁘기로 소문났다는 어느 하천의 다리 위에서 한 손에는 입영통지서를 다른 한 손에는 짐 가방을 들고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축제와 입영식이 겹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왠지 지구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군인이 되고 싶었다. 하늘에 부끄럼 없는 용기를 가지고 의롭게 살라는 의미로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사자성어에서 따온 내 이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 시절, 집 근처 계룡대에서 열렸던 국군의 날 행사에서 한 군인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고 탱크에 태워줬던 것도 군인의 꿈을 갖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늘 꿈꿔왔던 군인이 되는 날인데도 나는 마치 어디 끌려온 것 사람처럼 우울했다. 이제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이 낯선 곳에서 혼자 모든 걸 헤쳐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아빠는 들어가면 밥이 부실할지도 모르니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맛집을 찾아 이것 저것 시켜줬지만, 정작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대충 쑤셔 넣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연병장에 서 있었다. 내 동기가 될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각자의 얼굴엔 나름의 비장함이 묻어 있었지만, 사실은 다들 좀 멍청해 보였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거기에 있으면 모두들 멍청이가 된다. 이순신 장군님도 입영 첫날은 멍청하셨을 것이다. 훈련 교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빨간색 모자를 쓴 무서운 사람들이 우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줄 맞춰 세웠다. 애국가를 부르고 부모님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존댓말을 쓰며 비교적 친절하던 빨간 모자의 훈련 교관님들은 부모님들이 부대를 떠나자마자 아주 불친절해졌다. 험악한 표정을 짓고 거친 말투를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내가 군대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훈련소에서의 첫날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유 없이 화가 나 있는 훈련 교관님들과 익숙하지 않은 공간, 퀘퀘한 냄새, 생전 처음 듣는 단어들과 처음 써보는 말투.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입고 왔던 옷들을 반납 후 지급 받은 해군 체육복을 어색하게 입고 침상 끄트머리에 앉았다. 딱딱하고 끈적했다. 벽쪽으로는 관물함이 붙어있는데,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았다. 교관님이 지시 내릴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긴장된 자세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 방을 둘러봤다. 열댓 명의 여자가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역시나 멍청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밤공기는 아직 쌀쌀했지만, 생활관만큼은 긴장된 숨 공기로 데워져 후덥지근했다. 더워서 손이 끈적거렸다. 한 용기 있는 여자가 손을 번쩍 들고 환기를 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엎드려 뻗쳐서 벌을 받았다.
아. 이곳은 맥락이 없는 곳이구나.
삼십 분이 지났을까. 다시 교관님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관등성명 대는 법, 군용 매트 사용 방법, 모포를 펴고 개는 방법, 베개의 위치, 군화 정리 법, 내일의 기상 시간, 목소리를 크게 해라! 등을 교육해주었다. 열심히 교육해 주셨지만, 내가 알아들은 건 목소리를 크게 하라는 것밖에는 없었고, 그 말을 하는 교관님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조금 작게 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했다간 벌을 받을 게 뻔해서 다 이해한 척했다. 교육을 끝낸 교관님은 매트와 모포를 깔고 점호 준비를 하라 그랬다. 점호가 뭔지도 모르는 나는 그냥 옆 사람이 하는 걸 얼레벌레 따라 했다. 다행히 내 옆 사람은 군사학과 출신이라 교육받은 걸 잘 알아들은 듯했다. 옆 사람을 따라 복도로 나가서 섰다. 생활관에는 총 3개의 방이 있었고, 그 방에는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사이의 여군 후보생들이 들어가 있었다. 사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복도에 모이니 바글바글했다. 교관님은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꽥 지르고 우리를 키순으로 세웠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받고 방 배정도 다시 받았다. 나는 사십 몇명중 아홉번째로 컸다. 군사학과 출신의 내 옆사람은 키가 작아서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방 배정을 마친 교관님은 이제 취침을 할 거라고 했다. 씻지도 않고 자야 하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아까 환기녀가 맥락없이 얼차려 받는 걸 본 후로 질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교관님께서는 내일 기상 시간은 공다섯시 삼십분(05:30)이니까 빨리 자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까끌까끌한 모포를 덮고 누웠다.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이 있는 내 방으로 가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도 싫었다. 엄마가 진짜로 보고 싶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훌쩍거리면 혼날 것 같아서 꾹 참고 자는척 했다. 내일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다.